지난 2017년, 한겨울 광장의 촛불로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고, 이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극심한 내부 갈등이 결국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초래했다는 처절한 반성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오랜 야당 시절을 버텨내며 다져진 문재인 정부의 초기 민주당에는 시대의 대안이 될 만한 걸출한 차기 주자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가능성들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안희정, 김경수, 박원순이 차례로 중앙 무대에서 사라졌다. 잔인하게도 이들의 몰락은 외부 적들의 정교한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내부자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내밀한 균열과 폭로가 본질이었다. 거목들이 쓰러진 자리에 떠오른 인물은 이낙연이었다. 민주당은 박근혜를 탄핵했던 촛불 시민들의 역동적인 지향점과는 완전히 다른, 관료적이고 안일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는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규정하게 만드는 결정적 비극의 서막이었다.
이번 이재명 정부의 탄생은 한편의 거대한 드라마였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망상가 대통령과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영부인이 빚어낸 왕이 되려던 욕망, 그 황당무계한 비상계엄 사태를 온 국민이 온몸으로 막아낸 끝에 우리는 이재명이라는 혁신가를 선택했다. 이 과정을 우리는 ‘빛의혁명’이라고 부른다. 이재명은 민주당의 뿌리이자 심장인 전남과 전북의 전사적인 지지는 물론, 전국 민주당원들의 압도적 염원에 의해 대통령으로 밀어 올려졌다. 그리고 이번 빛의 혁명 당시 우리가 공통적으로 인정한 ‘빛의혁명’완수가 이재명의 당선이었다.
하지만 혁명의 승리에 도취하기도 전에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이재명의 최고위원으로 이름을 알렸던 정청래가 문재인 정부 초기 이낙연의 포지션을 고스란히 차지하며 당대표의 자리에 올랐다. 정청래는 온라인 '셀럽'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아무런 철학적 무장도 없이, 말로는 도저히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모양으로 제9회 지방선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공천 잡음이 극에 달했을 때, 당대표 정청래는 대형 유튜브 체널에 나와 “공천이 아주 잘되고 있다”라며 정치 ‘리스너’와 지지자들을 기만했다. 그 거짓된 확신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지방선거의 생생한 현장을 아주 냉정하게 관조하고 있었다. 우리가 목격한 이번 민주당의 선거는 단언컨대 중앙당도, 광역당도, 지역당도 존재하지 않는 ‘민주당 간판만 달고 뛰는 무소속 후보들의 연대선거’였다.
정청래 지도부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겠다는 거시적 비전이나 시대적 철학을 단 한 조각도 제시하지 못했다. 각 지방의 기초단체는 국민의 구체적인 삶과 대한민국이라는 정부의 권력이 가장 긴밀하게 맞닿는 최전선이다. 이곳의 삶은 하루하루 치열하게 먹고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터다. 하지만 민주당 중앙은 이 영역의 본질적 의미를 그저 자신들의 권력을 창출하는 근원으로만 여기는것같다. 그러나 기초단체의 진짜 본질은 그와같은 정치 식민지가 아닌, 세상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도 삶을 지켜내려는 위대한 개인들의 ‘세계’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이 공간에서 민주당은 주민들에게 “우리가 당신의 삶에 무엇이 되겠다”라며,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일상에 어떤 구체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명백한 철학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국가급의 권력이란 선(good)을 지향하는 명확한 철학적 구조가 없이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삶에서 흘러나오는 에센스를 착취하며, 권력 주변의 부정한 자들만 배를 불리는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드는 엔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기초단체(또는 지방정부)야말로 내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커다란 권한과 이권이 강물처럼 흐르는 난장(亂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청래 체제는 이 숭고하고 잘게 쪼개진 주민들의 세상을 그저 지역 토호들에 패권 다툼의 장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당대의 혁명가를, 문재인이라는 품격을, 이재명이라는 혁신가를 배출해낸 민주당원들이 바라는 세상을 정청래는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미숙하게도 그저 ‘셀럽 정청래’ 본인의 사적 계파와 세력을 구축하는 사유화의 기회로 삼았을 뿐이다. 그리고 오만하게도 세상에 선언한 모양이 되어버렸다. '내가 바로 포스트 이낙연이다’라고 말이다.
지금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민주당 비극의 시나리오’ 초입은, 우리가 당장 인지하고 철저히 ‘보수공사’해야할 절대적 과제이다. 이를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공익과 사익의 파괴적인 충돌이며, 정치적 언어로 정제된 인류의 ‘일반의지(General Will)’와 감각·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는 모든 개별 인간의 ‘사적 욕망’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 초기,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였다. 각자의 거친 ‘인생’을 힘겹게 살아내느라 광장에서 위대하게 결집했던 우리의 ‘일반의지’가, 정치 협잡꾼들의 얄팍한 감각과 사적 욕망에 야금야금 잠식당하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그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훨씬 더 위험하고 엄중하다. 온 국민이 비상계엄이라는, 누군가에는 처음보는, 누군가에게는 되풀이되는 악몽의 격인 스트레스 폭격을 맞았고, 저항과 투쟁이라는 전 국가적 육체노동을 온몸으로 감내했다. 그 거대한 격동을 거친 후에도 삶은 평화로워지지 못했다. 내란수괴의 잠정적 감금 상태라는 기나긴 긴장 속에서 곧바로 지방선거라는 거대한 정치 일정을 맞이한 것이다.
국민과 개인들은 지금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세상을 좋게 바꿔달라고 목놓아 외치면서도, 당장 내 손으로 하루의 생계를 지탱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언제나 우리 어깨위에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시국에 정청래는 본인의 정치적 한계와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거기에 이낙연의 색이 있다는걸 우리는 보았다. 그리고 지금, 정말 많은 골수 민주당원들이 소리 없이 등을 돌리고 있다.
오늘로써 제9회 지방선거의 막이 내린다. 고(故) 이해찬 총리가 당신의 전 생애를 바쳐 추진하고자 했던 대업은 다름 아닌 ‘구조적으로 정의로울 수밖에 없는 민주당 생태계의 구축’이었다.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이 사상가의 혜안에 감명받고 감동했다. 그리고 2026년을 살아가는 보편적인 민주당원들은 이제 명확히 알고 있다. 정청래가 사유화하려는 지금의 민주당은 우리가 열망했던 민주당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선거가 끝나면 우리는 한시의 지체도 없이 이번 지방선거를 철저히 복기(復棋)해야 한다. 모든 지역의 공천 과정과 결과를 심도 있게 파헤쳐야 한다. 지방을 더 이상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상왕(上王)으로 군림하며 모든 권력과 이권을 주무르는 봉건적 영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지방은 풀뿌리가 스스로 자라나 거목으로 성장하는 터전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자라난 지역의 거목들이 중앙 무대에서도 당당히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건강한 토양이 되어야 한다. 그때는 지방의 삶도 풍요롭고 행복하며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넘치는 세상일 것이다.
선거의 먼지가 걷히는 즉시, 우리 광전타임즈는 민주당의 이번 지방선거 퇴행사를 낱낱이 복기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이라는 시민의 플랫폼을 사유화하려는 비루한 정신상태를 가진 자격 미달의 정치인들을 필터링하는 일에 앞장설 것이다. 두 번은 안된다. 시민혁명 직후 민주당이 망가지는 역사의 비극은 한 번으로 족하다.
2년후에 총선이 있다. 이제 우리는 지역의 왕이 아닌 훌륭한 '일꾼'을 뽑아내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2026년, 지방의 현실이다. 그래서 두번의 실패는 안된다. 시민 혁명 직후에 민주당이 망가지는 역사는.
장혁훈 편집국장 jebo@k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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