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가장 비극적인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모악산(불갑산) 민간인 희생 사건’의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가 마침내 함평 땅에 세워졌다.

'모악산(불갑산) 민간인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및 추모제 행사추진위원회'는 5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전남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 일주문 앞에서 유족과 지역 주민,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비 제막식과 추모제를 엄숙히 거행했다.

이번 행사는 용천사 신도회가 주최하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불갑산유족회, 광주전남지역자주통일단체 일동, 남녘현대사연구소가 공동 주관하여 마련됐다.

■ 75년 전 대보름날의 비극, 무고한 주민 1천여 명 희생 이 사건은 75년 전인 1951년 2월 20일(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에 발생했다. 당시 국군 제11사단은 빨치산 토벌을 목적으로 이른바 ‘대보름달작전’을 전개하며 모악산(불갑산) 일대를 공격했다.

그러나 정작 빨치산 부대는 작전 하루 전날 이미 유치지구로 후퇴한 상태였다. 결국 군경은 산에 남아있던 무고한 피난민들을 빨치산 또는 협조자로 오인했고, 단 하루 만에 최소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는 한국전쟁기 단일 지역에서 발생한 전국 최대 규모의 대량학살 사건으로, 지난 2008년 12월 23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국가 권력에 의한 불법 학살이었음이 세상에 밝혀진 바 있다.

■ "이제라도 영면하소서"…함평 땅에 새겨진 치유와 평화의 이정표 그동안 제대로 된 위로조차 받지 못했던 희생자들을 위해, 마침내 사건의 중심지였던 함평 용천사 길목에 위령비가 들어서게 된 것은 지역사historical하게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오랜 세월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온 유족들은 위령비에 새겨진 이름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위령비 건립을 주도한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장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위령비가 억울하게 구천을 맴돌던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고, 유가족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나아가 이 자리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는 교육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던 함평의 아픔을 드러내고 평화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이번 위령비 제막은,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울림과 함께 전 국민이 기억해야 할 평화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선종인 기자 jebo@kjtimes.co.kr